옛사람들의 삶과 문화

하루30 국사과와 함께 공부하는 5학년 2학기 사회 1단원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

작성자 하루30 국사과 2023-08-04
사회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공부친구, 하루30 국사과 입니다. 
                                오늘 하루30 국사과와 함께 공부할 내용은 5학년 2학기 사회 1단원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입니다.
                            


5학년 2학기 사회 1단원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

1.나라의 등장과 발전

1)고조선의 건국과 발전 과정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 이후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 시작했으며 이들 중 가장 힘이 센 세력이 주변 세력들을 하나로 모으면서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등장했습니다.

                                -고조선은 우수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다른 부족을 정복하거나 통합하면서 세력을 확장했으며, 고조선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는데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는 미송리식 토기, 비파형 동검, 탁자식 고인돌 등이 있습니다.

                                2)고구려, 백제, 신라의 성립과 발전 과정
                            

-한의 침입으로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는 여러 국가가 등장했습니다.


                                ㄱ.백제의 성립과 발전 과정
                                -성립: 고구려의 왕자인 온조가 고구려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지역에 세운 나라임
                                -전성기: 삼국 중 가장 먼저 전성기를 맞았으며, 근초고왕은 남쪽 지역으로 영토를 넓히고 고구려를 공격해 북쪽으로 진출했으며, 주변 나라들과 활발하게 교류함

                                ㄴ.고구려의 성립과 발전 과정
                                -성립: 주몽이 부여를 떠나 졸본에 세운 나라임
                                -전성기: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꾸준히 정복 활동을 벌여 5세기에 전성기를 맞음

                                ㄷ.신라의 성립과 발전 과정
                                -성립: 박혁거세가 지금의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신라를 세웠음
                                -전성기: 5세기 초 고구려가 힘이 강해져 남쪽 지역으로 진출해 오자 신라는 백제와 손을 잡고 고구려에 맞섰음

                                3)신라의 통일 과정
                            

-신라의 김춘추는 당과 동맹을 맺고 왕위에 오른 뒤 백제를 멸망시키고, 김춘추에 이어 왕이 된 문무왕이 당과 함께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자 당은 동맹을 깨고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 했으나 당의 속마을을 알게 된 신라는 당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했습니다. 

                                4)발해 성립 및 발전 과정
                                -성립: 대조영은 고구려의 유민으로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이끌고 동모산 지역에 발해를 세웠습니다.
                                -발전 과정: 군사, 문화적 힘이 강력한 나라로 발전해 고구려의 옛 땅을 대부분 되찾았음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고 생각했고 주변 나라도 그것을 인정했으며, 고구려와 비슷한 문화가 발달했음을 문화유산 기록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5)고구려와 백제의 문화유산
                                ㄱ.고구려의 문화유산
                                -고분: 고구려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벽화를 많이 남겼으며, 고분에 그려진 그림에서 당시 사람들의 의식주, 종교 등과 관련된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음
                                -불교문화: 삼국 시대 사람들은 불교를 받아들여 절, 탑, 불상 등 불교와 관련 있는 문화유산을 많이 남겼음

                                ㄴ.백제의 문화유산
                                -무령왕릉: 백제가 중국, 일본과 교류했음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
                                -미륵사: 백제 무왕 때 지은 절로 백제에서 규모가 가장 컸다고 전해지며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석탑 중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입니다.

                                6)신라와 가야의 문화유산
                                ㄱ.신라의 문화유산
                                -금관총 금관, 도기 기마 인물형 명기, 봉수형 유리병 등이 있으며 신라는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에 백성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고 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불교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함

                                ㄴ.가야의 문화유산
                                -가야 지역에서는 질 좋은 철이 많이 생산되었는데 이를 이용해 다른 나라와 활발히 교역함.

                                7)불국사와 석굴암의 우수성
                                ㄱ.불국사
                                -신라의 불교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토함산에 있는 절로 신라 사람들은 부처의 나라를 이루려는 마음을 담아 불국사를 지었음
                                -신라 사람들의 예술 감각을 보여 주는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음

                                ㄴ.석굴암
                                -화강암을 쌓아 올려 동굴처럼 만든 신라 시대의 절로 내부에는 보존불과 함께 불교의 여러 신과 불교와 관련된 인물들이 조각되어 있음
                                -건축 기술의 우수성뿐만 아니라 그 내부의 예술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음
                            

2.독창적 문화를 발전시킨 고려

                                1)고려의 건국과 후삼국 통일
                                -배경: 귀족들의 왕위 다툼으로 정치가 혼란해지자 지방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호족이 등장했습니다. 호족이란 신라 말 고려 초에 활동한 지방세력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각 지방을 다스렸습니다. 여러 호족 중에서 세력을 키운 견훤과 궁예는 나라를 세우고 (견훤이 세운 나라는 후백제, 궁예가 세운 나라는 후고구려) 신라 말에 나라가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로 나뉘었는데 이를 후삼국이라 합니다.
                            

-왕건의 건국 과정: 왕건은 송악의 호족으로 궁예의 신하가 되어 후고구려의 건국을 도왔으며, 후백제와의 여러 전투에 참여해 뛰어난 공을 세워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 후 궁예가 신하를 의심하고 죽이며 일부 호족들을 억압하자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웠습니다.


                                2)서희와 강감찬의 활약을 중심으로 거란의 침입과 극복 과정
                                -고려와 거란의 관계: 거란은 당이 멸망한 이후 당의 북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 나라를 세우고 발해까지 멸망시키자 고려는 거란을 경계합니다. 이후 송이 건국되자 고려는 송과 우호적으로 지내며 거란을 더욱 경계했습니다. 
                                -거란의 1차 침입: 거란은 고려와 송의 관계를 끊으려고 고려를 침입함 -> 고려가 첫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위기감이 높아졌고 고려는 대응 방안을 논의함
                                -거란의 2차 침입: 1차 침입 이후 고려는 다시 거란의 침입을 받아 개경을 빼앗기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고려는 돌아가는 거란을 끈질기게 공격해 많은 피해를 줌
                                -거란의 3차 침입: 2차 침입 이후 거란은 고려에 강동 6주를 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돌려주지 않고 고려의 왕이 거란 황제를 만나러 오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자 고려를 침입함

                                3)몽골이 침입했을 때 고려가 한 대응
                                -당시 상황: 몽골은 칭기즈 칸이 부족을 통일하여 세력이 강해지면서 주변 나라들을 침입했으며 주변 나라에 물자를 많이 바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고려에 온 몽골의 사신이 돌아가는 길에 죽자, 몽골은 이를 이유로 고려를 침입해 왔습니다. 
                                -고려의 대응: 몽골의 1차 침입 이후 고려는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고 몽골과 싸웠으며, 주로 산성이나 섬으로 들어가 몽골군과 싸움
                            

3.민족 문화를 지켜 나간 고려

                                1)조선의 건국 과정
                                ㄱ.고려 말의 시대적 상황
                                고려 말 연이은 외적의 침입과 권문세족의 횡포로 나라 안팎이 매우 혼란스러웠으며 신진 사대부들 중 일부는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며 성장한 신흥 무인 세력과 손잡고 고려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ㄴ.이성계와 신진 사대부의 등장
                                -명은 고려에 북쪽 땅의 일부를 내어 놓으라는 무리한 요구를 했으며, 고려는 이성계에게 요동 지역을 공격하게 함.
                                -이성계는 요동으로 가는 중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반대 세력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후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음
                                -신진 사대부마다 고려 말의 어지러운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이 달랐는데, 정몽주는 고려를 유지하며 개혁하려 했으나 정도전은 고려를 대신해 이성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함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였고,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고려를 멸망시켜 새로운 왕조인 조선을 건국함.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오늘날의 서울인 한양으로 도읍을 옮김

                                2)세종 대에 이루어 낸 발전
                                -조선은 세종 대에 과학 기술, 문화,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 크게 발전했으며, 세종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백성이 잘 사는 것이 나라가 좋아지는 길이라 생각했음
                                -세종은 장영실같이 신분은 낮아도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관리로 뽑아 과학 기술을 개발하고 연구하도록 했음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했는데 훈민정은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혀와 입술의 모양에서 과학적 원리를 찾아 창제했음.

                                3)유교 질서를 바탕으로 한 사회 모습
                                -신진 사대부들은 조선을 건국한 후 임금부터 백성들까지 모두 유교 질서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나라의 근본이 백성에게 있다는 유교의 가르침에 따라 왕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자 했음
                                -백성들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며 남자와 여자, 아이와 어른 사이의 예절을 지켜야 한다고 했음 

                                4)임진왜란의 과정과 극복하기 위한 노력
                                ㄱ.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상황
                                -조선의 정치는 혼란스러웠으며 군사력이 약화되었고 나라를 세운 후 200년 동안 평화를 누렸기에 전쟁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음
                                -일본은 100년 넘는 기간 동안 전쟁을 지속하면서 군사들이 잘 훈련되어 있었음

                                ㄴ.임진왜란의 발생 과정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과 명을 정복하려고 1592년 4월 13일 새벽에 부산으로 쳐들어옴
                                -일본군은 부산진과 동래성을 순식간에 함락하고 한양(서울)으로 빠르게 향했고, 조선군은 일본군에 맞서 싸웠으나 계속 졌고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란했음
                                -육지에서 조선군은 거듭 패배했으나 바다에서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무찌르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1년 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된 이순신은 일본군의 침입에 대비해 거북선을 만들고 식량과 무기를 준비함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 수군은 여수에서 출발해 거저 옥포만에서 일본 수군과 싸워 첫 승리를 거둔 후 이어지는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음

                                5)병자호란이 일어난 과정
                                ㄱ.조선, 명, 후금의 상황
                                -세력이 약해져 가던 명은 임진왜란에 참여한 이후 더욱 힘이 약해졌으며, 이 틈을 타 누르하치가 여진을 하나로 통합해 후금을 세우고 명을 위협했음

                                ㄴ.광해군의 중립 외교 정책
                                - 광해군은 세력이 약해진 명과 새롭게 강 대국으로 성장하는 후금 사이에서 신중한 중립 외교를 펼치며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했음
                                -그러나 명이 베푼 은혜를 저버리는 정책이라 비판하며 광해군을 내쫓고 인조를 왕으로 세움
                                -인조는 명을 가까이 하고 후금을 멀리했음

                                ㄷ.병자호란 발생
                                -후금은 세력을 키워 나라 이름을 청으로 고치고 정묘호란 때 맺은 형제의 관계를 ‘임금과 신하의 관계’로 바꾸자고 했으나 조선이 청의 요구를 거절하자 청은 다시 조선을 침입함

                                ㄹ.병자호란의 전개 과정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청에 맞서 싸웠음. → 남한산성은 전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식량도 부족했음. 
                                -남한산성 안의 신하들은 청군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견해와 싸움을 멈추고 화해하자는 견해로 나뉘어 있었음
                                -상황이 불리해지고 강화도가 함락되어 피란 가 있던 왕족과 대신들까지 포로가 되었음

                                ㅁ.병자호란의 결과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했음
                                -전쟁이 끝나고 조선과 청은 신하와 임금의 관계를 맺었고, 소현 세자와 봉림대군 그리고 많은 대신과 백성이 청에 인질로 끌려 갔음.

                                지금까지 5학년 2학기 사회 1단원 옛사람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 함께 공부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2단원 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오늘날의 우리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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